산불 이모저모
작성일:
Tags: wildfire, business
재직 중 수행했던 산불 조기 검출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그 배경이 되는 미국 서부 산불 검출 생태계(?)에 대해 정리해본다.
왜 미국 서부의 산불인가
최근 우리나라 역시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미국 서부 지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전부터 산불로 인한 대규모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어오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미서부 지역은
- 건조한 기후
- 광범위한 산림 면적
- 강한 계절풍(Santa Ana winds)
- 그리고 최근 가속화된 기후 변화(climate change)
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산불의 발생 빈도와 피해 규모 모두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숫자로 보는 산불 피해의 규모
아래 그래프1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20건의 산불을 연도별로 정리한 것으로 두 가지 지표를 함께 나타내고 있다.(빨간색은 화재로 인해 소실된 면적을 나타내고 초록색은 파괴된 건물수를 나타낸다.)
이 그래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2015년 이후에 발생한 산불이 전체의 약 7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산불이 단순히 “자주” 발생한 수준을 넘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동반한 ‘파괴적인 산불’이 최근에 집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021년 발생한 Dixie Fire의 경우, 약 1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면적이 불에 탔다. 이를 한국의 지형으로 대입해보면, 제주도 면적(약 45만 에이커)의 두 배가 단일 산불로 소실된 셈이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조기 대응이 실패했을 때 산불이 얼마나 빠르게 통제 불가능한 재난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를 활용한 실시간 산불 감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의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은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응 전략을 시도해 왔다. 그중 핵심적인 변화가 바로 산간 지역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시 감시하는 방식이다. 카메라 + 네트워크 + 실시간 분석이라는 조합이 현실적인 산불 조기 대응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통신 인프라에서 영상 기반 감시 시스템으로 발전
미국 서부 지역의 산불 감지 생태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 출발점은 2000년대 초 샌디에고에서 시작된 HPWREN(High Performance Wireless Research and Education Network)2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HPWREN은 본래 대학과 연구기관을 위한 광역 무선 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 네트워크 연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산악 지형의 산 정상에 무선 중계 시설을 설치·운영하는 과정에서, 소방·경찰 등 퍼스트 리스폰더(First Responder) 기관과의 협력이 자연스럽게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협력은 HPWREN을 단순한 연구 네트워크를 넘어, 재난 대응과 공공안전을 지원하는 핵심 통신 인프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산불이 빈번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산악 지대에 구축된 통신 인프라는 화재 발생 시 현장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산악 지형 통신 운용 경험과 공공기관 협력 모델은 이후 카메라 기반 산불 조기 감지 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HPWREN의 역사를 다룬 유튜브 영상: 링크)
AlertWildfire, 개방형 카메라 기반 산불 감시의 시작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3년, 타호(Tahoe) 지역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AlertWildfire3가 출범하였다. AlertWildfire는 UC San Diego, University of Nevada Reno, University of Oregon 등 서부 지역 주요 대학들이 협력하여 구축한 산불 감시 네트워크로, 산악 지역에 PTZ(Pan-Tilt-Zoom)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 영상을 공개하는 개방형(open-access) 플랫폼을 지향했다. 카메라 영상은 연구자뿐 아니라 소방 당국, 지방 정부, 일반 시민에게까지 공개되었고, 이는 산불 발생 초기의 시각적 정보 공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결과 2022년경까지 미국 서부 전역에 1,000대 이상의 산불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으며, AlertWildfire는 단순한 연구 프로젝트를 넘어 사실상의 공공 산불 감시 인프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AlertCalifornia, 주(State) 단위로 확장된 공공 산불 대응 플랫폼
AlertWildfire의 성과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주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인 산불 대응 역량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 결과 UC San Diego를 중심으로 AlertWildfire의 기술과 운영 경험을 계승한 AlertCalifornia4 프로젝트가 출범하였다. AlertCalifornia는 단순한 카메라 네트워크를 넘어, 주 정부·대학·소방 기관이 협력하는 통합 산불 감시·대응 플랫폼으로 설계되었다. 카메라 영상, 통신 인프라, 운영 프로토콜이 주 단위로 표준화되며, 캘리포니아 전역을 아우르는 공공 산불 감시 체계로 발전했다. 현재 AlertCalifornia는 미국 서부 산불 조기 감지 생태계에서 공공 영역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며, 개방성과 공공 안전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의 접근, Pano AI
공공 주도의 산불 감지 인프라가 개방성과 접근성을 중심 가치로 발전해온 반면, 민간 기업들은 보다 조기 탐지 정확도와 운영 자동화에 초점을 맞춘 접근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Pano AI5다. Pano AI는 2019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산악 지역에 설치된 초고해상도 파노라마 카메라와 클라우드 기반 컴퓨터 비전 AI를 결합한 상업용 산불 조기 감지 솔루션을 제공한다. 360도 시야를 커버하는 고정형 카메라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수십 킬로미터 반경의 연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사람보다 빠른 초기 연기 감지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Pano AI의 가장 큰 차별점은 폐쇄형(end-to-end) 운영 모델에 있다. 카메라 영상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으며, AI가 탐지한 연기 후보는 전문 인력이 추가로 검증한 뒤, 위치 추정 결과를 소방 당국·전력 회사·산림 관리 기관 등에 직접 전달한다. 또한 Pano AI는 보험사, 전력 회사, 대규모 토지 소유주 등을 고객으로 하는 B2B 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서비스 안정성, SLA, 확장성을 중심으로 기술과 운영이 최적화되어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콜로라도, 오리건, 호주 등 산불 위험 지역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위성을 활용한 산불 감지·추적
카메라 기반 산불 감지 시스템이 조기 탐지와 시각적 검증에 강점을 가진 반면, 위성 기반 감지는 광역 커버리지의 모니터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위성 기반 산불 감지는 주로 열 적외선(Thermal Infrared) 센서를 활용해 고온 이상(anomaly)을 탐지하며, MODIS(Terra/Aqua), VIIRS(Suomi NPP, NOAA-20) 센서는 수십 년간 전 지구 규모의 산불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다만 위성은 공간 해상도와 재방문 주기라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며, 실시간 연기 탐지에는 제약이 따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Planet7, OroraTech8와 같은 민간 위성 기업들이 고빈도 관측과 전용 열 감지 위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